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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린 개인전
감정중독 EMOTIONHOLIC

2021. 12. 3 - 2021. 12. 19
가삼로지을

   우리의 짧은 인생 사이사이에는 다양한 감정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타인과 공유하고, 서로 공감할 수 있다면 개인과 사회가 건강하게 존립하죠. 그러나 특정 감정이 지배적으로 자리한다면, 그 시대의 개인과 사회가 위험한 상태라는 신호일 겁니다. 최근에는 불안과 우울과 같은 감정들이 안개처럼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고 사회를 잠식하고 있네요. 윤혜린은 이런 현실에서 희미해진 감정들을 건져 올립니다.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과 닮은 자연으로부터 작가는 작업의 실마리를 찾아갑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은 작가가 우연히 접한 식물 프로테아 potea 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작가는 프로테아 꽃의 다양한 형태와 특이한 번식 방법을 감정의 형태와 특성에 연결합니다.

 

   프로테아는 형태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둔갑술에 능한 신 프로테우스 Proteus 에서 유래하여 명명되었습니다. 예언 능력을 지닌 프로테우스는 예언하기를 극도로 꺼려, 자신의 모습을 짐승, 돌, 바람 등 여러가지 형태로 바꾸어가며 사람들로부터 도망쳤는데요. 그를 붙잡지 못해 예언을 듣지 못한 사람들처럼, 작가는 늘 감정을 정확히 그려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망망대해 어느 곳에 잠들어있는 프로테우스를 순식간에 밧줄로 꽁꽁 묶어 결국 예언을 들었던 것처럼,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작가는 금방 모습을 바꾸고 사라지는 감정들을 붙잡아 관찰하고 그려냈습니다.

 

   자생하는 프로테아는 특이하게도 번식을 산불에 의존하는데, 이는 열매가 불에 닿아야만 종자를 퍼트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작가는 우리의 마음 안에 피고 지는 감정도 이와 같다고 말합니다. 개인 내면에 자리한 여러 감정들을 사회에 꺼내어 타인과 공유하고 연결함으로써, 그것이 발화되고 퍼지면서 세상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본 전시에서 작가는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각자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을 오롯이 마주하고 불을 붙여 공유하기를 제안합니다.

 

   전시장에는 한 쪽 분량의 아주 짧은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가 공동 저술한 『연기와 연기(리소딴, 2021)』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입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순간들에 중독된 ‘감정중독’에 걸린 인물로 묘사됩니다. 본 전시장은 소설 속 주인공이 떠나고 난 후 해가 뜨기 전의 장소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전시장 벽면의 그림들은 <One by One> 시리즈로,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들이며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6가지 감정입니다. 이는 희로애락공증, 즉,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공포, 증오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종종 듣거나 사용하는데요. 이 문장을 뒤집고자 작가는 <One by One> 시리즈를 기획했습니다. ‘일희일비 하자.’고 말이죠. 그런 맥락에서, 자신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보는 경험이 결핍된 현대인과 감정 중독에 걸린 주인공은 극과 극에 위치해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삶을 건강하게 살아내기 위해서 매순간 감정을 온전하게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본 전시가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일희일로일애일락일공일증 一 憙 一 怒 一 哀 一 樂 一 恐 一 憎*’ 하는 경험의 공간이길 원합니다. 소설 속 인물이 찾았던 곳처럼요.

 

   이제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으며 깊은 곳에서 올라와 만개한 여러 감정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천천히 각자의 감정들을 꺼내어 하나씩 불을 붙여보면 어떨까요? 여러분이 가진 불의 온도는 차가울 수도, 아주 뜨거울 수도 있겠습니다. 어떤 온도이든 상관은 없어요. 충분히 자신의 감정을 마주했다면, 전시장을 나갈 때에는 내일 다시 떠오르는 해와 함께 건강하게 자라날 감정의 씨앗들이 오늘을 살아갈 여러분들의 마음에 흩뿌려져 있기를 바랍니다.

   *순간순간 닥쳐오는 상황에 따라 감정이 변화하는 모습을 가리키는 고사성어 일희일비를 작가가 변형한 표현.

글/ 윤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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